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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예고


  • 문화재청공고 제2015-242호(2015. 6. 22.) | 공고(일부개정) | 예고기간 : (2015. 6. 22. ~ 2015. 7. 22.)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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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공고제2015-242호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제11조 제4항의 규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고 평가된 4건에 대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에 앞서 다음과 같이 예고합니다.

2015년 6월 22일

문화재청장

 

1. 공 고 명 :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예고

 

2. 공고사항

가. 보물지정 예고 : 총 4건

연번

문 화 재 명

1

봉수당진찬도

2

희경루방회도

3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4

경주 남산 삼화령 석조미륵여래삼존상

 

 

나. 지정예고 사유 : 붙임 참조

 

3. 예고일자 : 관보 공고일

 

4. 예고기간 : 관보 공고일로부터 30일 이상

 

5. 연 락 처 :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 유형문화재과

ㅇ 주 소 : (우 : 302-701)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ㅇ 전 화 : 042-481-4687 / 팩스 : 042-481-4939

ㅇ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전자메일 wenhua1@korea.kr

 

 

 

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예고 사유

□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 지정현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6호(2008.07.10.지정)

소유자(관리자): 동국대학교(동국대학교박물관)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수 량: 1폭

규격(cm): 156.2×65.0cm

재 질: 비단바탕에 채색

형 식: 화축

제작연대: 1795년경

사 유

봉수당진찬도는《華城陵幸圖屛》중 제일 척 장면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화성능행도병》은 정조가 1795년(정조19) 윤2월9일부터 16일까지 8일 동안 華城에 있는 부친 思悼世子(1735-1762)의 묘소인 顯隆園에 行幸했을 때의 주요 행사를 그린 8폭 병풍이다. 이 도병은 <華城聖廟展拜圖>, <落南軒放榜圖> <奉壽堂進饌圖> <落南軒養老宴圖><西將臺夜操圖><得中亭御射圖><還御行列圖><漢江舟橋還御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수당진찬도는 이 현륭원원행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로서 어머니 惠慶宮洪氏(1735-1805)를 위해 베풀었던 진찬례를 그린 것이다. 을묘년 현륭원 원행에 대해서는 『園幸乙卯整理儀軌』라는 상세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능행도 병풍은 조선시대 궁중행사도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서, 양식적 특징은 물론 제도적 부분에서 볼 때 후대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동국대학교 소장 <봉수당친찬도>는 1970년대 한 재일교포가 동국대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단폭이지만, 작품성 만을 두고 판단할 때에는 어떤 8폭병풍이나 다른 낱폭 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장황은 현재 리움소장 환어행렬도와 비단의 문양이나 표구방식이 동일하며, 크기도 대동소이한데 이 점 역시 주목된다. 필법에서는 이 두 점 사이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기록화 한 점을 그리는데, 대체로 3-4명의 화원이 동원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 다면, 아마도 이 두 점은 같은 8폭 병풍에서 갈라져 나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봉수당진찬도>는 현재 작품의 상태도 양호하고 질적 수준이 뛰어나다.

화면구성이나 설채와 원근법 사용방식 등에 있어 18세기말-19세기 초의 궁중기록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

 

□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

지정현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7호(2008.07.10.지정)

소유자(관리자): 동국대학교(동국대학교박물관)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수 량: 1폭

규격(cm): 98.5×76.8

재 질: 비단에 채색

제작연대: 1567년

제 작 자: 미상

사 유

동국대학교 소장 <봉수당친찬도>는 1546년(명종 1)의 증광시 문·무과 합격 동기생 5명이 1567년(선조 즉위)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에서 만나 방회를 갖고 제작한 기년작 계회도이다. 신묘생진시(辛卯生進試, 1531년)의 동방들이 1542년에 만나 제작한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와 함께 현전하는 16세기의 방회도 2건 중 하나이다. 방회도는 16, 17세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희경루방회도>는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례이다.

대부분의 16세기 계회도는 수묵화로 그려진 데에 반해 채색화로 그려진 경우는 드문 편이다. 1550년의 <호조낭관계회도>, <연정계회도(蓮亭契會圖)>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이 <희경루방회도>는 전라도 광주 지역의 화사(畵師)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아 지방화단에서 그려진 채색계회도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제목, 그림, 좌목, 최응룡으로 추정되는 ‘완산후인(完山後人)’이 쓴 발문까지 계회도의 형식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다.

인물을 묘사한 필치는 매우 생기 있고 활달하며 자신감이 넘친다. 또한 비슷한 자세의 인물을 같은 모양으로 판에 박은 듯 반복해서 그리는 투식적인 면이 적다.

희경루 건물 묘사에서도 보이는 대로 그린 듯한 꾸밈없는 필치를 엿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희경루방회도>는 제작시기, 양식적인 특징, 회화적 가치 면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慶州  壺?塚  出土  靑銅 ‘廣開土大王'銘  壺?)

지정현황: 비지정

소유자(관리자): 국유(국립중앙박물관)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수 량: 1점

규격(cm): 높이 19.4, 복경 24

재 질: 청동

제작연대: 415년(고구려 장수왕3)

사 유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는 1946년에 은령총과 함께 발굴한 호우총(140호 고분, 노서동 213번지)에서 출토된 유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호우의 외형은 위 아래의 높이가 거의 유사한 몸체와 뚜껑으로 이루어졌는데, 뚜껑의 중앙부로 가면서 반구형으로 솟아오르다 정상부에 연봉형의 꼭지가 달려있는 모습이다.

꼭지 주변에는 두터운 10엽의 화문을 둘렀고 그 주위를 돌아가며 1줄의 융기동심원과 다시 간격을 두고 3줄의 융기동심원을, 외연부 조금 못미친 곳에도 3줄의 융기동심원을 시문하였다. 직립된 뚜껑의 구연 아래로 동체가 놓여 있는데 아래로 가면서 둥글게 좁아지다가 하저부를 평편한 바닥으로 처리하였다. 측면에도 구연에 한줄, 몸체 중앙에 세줄, 아래쪽에 세줄, 바닥에 연결되는 부분에 한줄의 융기동심원을 둘렀다.

동체의 구연 한쪽면이 발굴당시부터 손상되어 현재는 새롭게 복원하여 붙인 상태이며 바닥면도 갈라진 부분을 보수하였지만 대체로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명문은 하저부에 4행 4자씩 총 16자가 새겨져 있다. 주조 당시부터 외형틀에 음각으로 새겨 넣음으로써 두터운 양각명으로 돌출된 것을 알게 되었다. 명문 상단에 보이는 #의 표시는 다른 고구려 유물에서 간혹 등장하는 기호로서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이 명문을 통해 고구려의 그릇이 교류를 통해 신라의 왕릉에까지 묻힌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당시 신라와 고구려의 대외 교류나 정치적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아 왔다.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과 함께 청동호우는 희소한 고구려 금속공예품이라는 점과 함께 명문을 지닌 삼국시대 고분의 편년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높다.

 

□ 경주 남산 삼화령 석조미륵여래삼존상(慶州南山三花嶺石造彌勒如來三尊像)

지정현황: 비지정

소유자(관리자): 국유(국립경주박물관)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수 량: 3구

규격(cm):본존 전체높이 163, 상높이 154, 어깨 폭 61.5, 광배폭 64

우협시 상높이 105, 어깨폭 32, 광배폭 36.5

좌협시 상높이 98.0, 어깨폭 31, 광배폭 37

재 질: 화강석

제작연대: 644년경(선덕여왕 13)

제 작 자: 生義

사 유

이 삼존상은 선덕여왕 13년(644년)에 도중사의 생의(生義) 스님이 경주 남산 북봉에서 발굴하여 삼화령에 봉안한 미륵상이자 경덕왕때 충담사가 중삼중구절(重三重九節)에 차를 공양했던 저명한 삼화령 미륵세존으로 비정(比定)됨에 따라, 정확한 하한연대를 알 수 있는 고신라 불교조각의 기준자료이다.

특히 신라시대에는 왕실과 귀족 가문 출신의 화랑을 미륵의 화신으로 여겨 미륵상을 많이 조성하였는데,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다. 물론 미륵여래삼존을 통해 신라화(新羅化)된 미륵신앙의 핵심적 단면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거니와 고신라 불상으로서는 유일하게 644년 무렵 도중사 승(僧) 생의의 현몽에 의해 조성하였다는 조성연기와 조성시기, 조성 이후 충담사에 의해 헌다공양(獻茶供養) 등 이 불상에 담겨 있는 일련의 신앙행위를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불상이 갖는 한국 불교조각사상에서의 비중과 위치는 막중 막대하고 할 수 있다.

이 삼존상은 불의와 천의, 그리고 치마 등에 시문된 유상의문(紐狀衣紋)과 협시보살상에서 삼굴(三屈)의 자세 등에서 새로운 조각양식이 반영되고 있고, 북위 이래 미륵불의 도상으로 확립된 의좌상의 이른 시기의 예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의좌상은 포항 고석사 마애불, 보은 법주사 마애불, 그리고 소형의 금동불상 등 통일신라 이후의 불상에서 몇 점 확인되지만, 이 상이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시원적 양식이고, 규모면에서도 큰 국내 유일의 원각 미륵의좌상(圓刻彌勒倚坐像)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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